공돌이 & 군바리

[군발] 눈(雪), 군 시절에는 그저 악마의 비듬이었을 뿐-_-;;;

개구리C 2010. 12. 4. 02:00

 눈(雪).

 정말 애증의 단어며 존재입니다.

 커플분들에게야 그저 낭만의 상징이겠지만, 현역으로 복무중인 병사들에겐 그저 악마의 비듬에 불과할 따름이죠= _ -;;;.

 뭐? 군대 안에서 눈 내리는게 재밌다고? 진정 그렇게 생각하는가!
 


 ...군 가산점에 관련되서 왈가왈가 할 생각은 없지만, 눈... 눈이... 눈 내리는 것이 재밌었다니... 언제 봐도 저 말은 돋네요.

 뭐, 어디나 그렇겠지만, 군대에서는 이놈의 눈은 평일엔 그렇다쳐도 주말에도 꼬박꼬박 빠짐없이 내려줍니다. 평일에 내렸다면 일반 작업 대신 눈이라도 쓸겠건만은, 주말에 내려버리면 얄짤없이 휴식이고 뭐고 없이 바로 제설 작업에 투입되었지요.

 싸리비와 인조비를 들고 일어나라 용사여!


 군 복무 중의 필자의 첫 눈은 훈련소시절이었습니다. 1월 군번이었던 탓에 비교적 눈은 꽤 자주 왔다지요. 그런데, 그 자주 내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필자의 거주지역은 경상남도 창원시인데, 정말 어지간해서는 눈이 잘 안 쌓이는 지역입니다. 1cm만 쌓여도 도시 교통이 마비될 정도니 창원 시민들의 대설(對雪) 저항력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없이 보여주는 사례랄까요?

 그런데, 입대한 그 해-_- 눈이 꽤 자주 내리더군요... 뭐 그래도 그 때는 훈련 째고 제설 작업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나름 즐겁긴 했습니다. 한가지 힘든 점이 있었다면, 화단의 소나무 위에 소복히 내려앉은 눈을 보자니 왠지 도너츠가 생각나더군요. 입대 전에 이것저것 많이 먹고 왔습니다만, 도너츠를 먹지 않고 왔던 필자였기에- 그 이후 미치도록 도너츠가 먹고 싶었습니다 ㅠ.


 본격적인 제설작업은, 필자가 일병을 달고 좀 지난 05년 11월 말이었습니다. 이 때 내렸던 첫 눈은 그야말로 블리자드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을 그런 수준이었던 덕에 잊을래야 도무지 잊을 수 없네요.

 창원에 살았기 때문에 좀처럼 눈이 쌓인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눈이 쌓인 관경을 좋아'했었던' 밥군은 그저 첫 눈에 즐거워했었습니다. 물론, 단 두시간만에 질리긴 했지만요.

 당시 미칠듯이 내렸던 폭설에, 눈이 펑펑 내리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반복하여 제설작업을 했었는데(정말 비효율적인!!!), 경비 부대였던 필자는 근무 투입로까지 제설작업을 해야 했는데... 거리가, 걸어서 약 한시간 정도 걸리는데 이게 또 저희 소대는 산길입니다 그려.

 그 길을 눈을 쓸면서 가면, 근무지까지 가서 다시 내려오면 약 3시간정도 걸리는데, 이걸 눈이 내리면 계속 해야하니까요 = _ -. 그 날 근무가 없다면 하루 종일 눈 쓸면서 산을 타야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어쨌거나, 첫 눈이 미칠듯이 내린 덕분에 하루 종일 제설만 하게 되었고, 그 첫 눈은 약 3일간 계속 내리더군요. 개인정비따윈 8:45분에 하늘나라로 보내버리고 제설만 했었습니다. 하물며 일병이니, 그 노고는 더 했지요-_-). 일병이 괜히 일병이 아닌. 하는 사...

 그렇게 연이은 폭설과 함께 해가 넘어가고, 1월인가 2월 무렵에- 전날 미친듯이 제설을 해놓고 잠에 들었는데 일어나니 또 왕창 쌓여있더군요.
 
 밤에 두시간 정도 폭설이 내렸다던데, 그 시간만으로도 그야말로 엄청난 양이 쌓여있었습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막사 앞으로 제설작업 집합하라는 통제 방송이 들렸을 때, 장난 아니고- 저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흐르더군요;;;. 군 복무 하면서 딱 두번 울었었는데, 첫번째가 훈련소 시절에 몰래 가족과 통화했을 때, 두번째가 저 때였습니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짜증이 극에 치달아버려서 말입니다 ㅠㅠㅠㅠㅠ.

 (군대의 경우, 식사 이전에 기본적인 제설작업을 끝내놓고서 식사 등을 한답니다;;) 

 또한 야간에 근무를 나갈 때면, 이런 폭설일 경우엔 총을 어깨에 메고서 사수와 부사수가 나란히 눈삽도 들고 산길을 나섭니다-_-;. 쌓인 눈을 치우면서 가야하기 때문이죠. 

 분명 앞 시간 근무자도 눈을 치우면서 갔을텐데, 저희 팀이 나갈 때 눈은 정강이까지 차 있었습니다. 이런 제설 작업 덕분에, 보통 근무 한시간 40분 전에 잠에서 깨어 준비를 하는데, 그 땐 2시간 40분전에 깨우더군요 ㅠㅠㅠ. 

 올라가서 눈 안치웠냐고 물어보니, 치우면서 왔답니다. 초소 안에는 눈 삽 두개가 잘 놓여져 있더군요. 그렇게 앞 시간 근무자들은 다시 눈을 치우면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이후 교대 시간이 되었을 때, 이상하게 뒷 근무자가 올라오지를 않더군요. 그래서 막사에 연락을 취해 봤는데, 이미 한참전에 올라갔답니다. 결국 정시보다 30분 후에야 교대를 했는데, 그 팀도 똑같이 물어보더군요.

 "너희들, 눈 안치우면서 갔냐?"

 물론 저희 답변도 앞 근무자와 똑같았지만요?

 "치우면서 왔습니다."
   

 때로는 도로에 쌓인 눈 때문에, 영외중대였던 저희는 걸어서 네시간 걸리는 11 탄약창 본부중대까지, 휴가복-_-으로 걸어가기도 했고, 부식을 받지 못해 단체로 걸어가서 부식을 짊어지고 오기도 했고...;; 이래저래 난리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차로 한번 슥 밀고 오면 다 뚫릴텐데, 차량 운행 금지 조치가 걸렸다나 뭐라나...ㅠ

 
 군대 눈이면 다 똑같지. 전방도 아니었으면서 도대체 어느 정도로 내렸길래 이렇게 투덜대는건가, 하면 말입니다.

 당시 05년 11월 말부터 내렸던 눈은, 충남 강설량 관측 이래 최악의 폭설로 기록이 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충남 연기군 일대에 겨울 내도록 내렸던 폭설은, 군인들보단 지역 농가분들께 그야말로 지옥이었습니다. 쉽게 할 수 있는 그런 말은 아니고, 그 당시 계속하여 나갔던 대민 지원 때, 부대 밖으로 나갈 때마다 마을에 상갓집이 늘어 있더군요.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실지 모르지만, 그 당시 오리 농가를 운영하시는 분들 중 상당히 많은 분들이 눈으로 인한 그 재해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기도 했습니다. 눈의 무게를 못 이기고 건물이 무너져 오리가 때죽음 당하기도 했는데, 이런 일이 겨울 내도록 반복되었기에 일어난 참사였지요.

 때문에, 그런 광경들을 바로 곁에서 계속 보아왔던 기억이 전역을 한지 한참이 지나도록 눈이라는 것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못 갖도록 만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당시의 대민지원을 하면서 참으로 마음이 묵직했기 때문입니다. 한 지역에 있었기 때문일까요? 남의 일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죠.

 눈을 단순히 낭만으로만 보기엔, 그 때의 광경과 분위기가 너무나도 제 기억과 가슴 깊숙히 박혀 있네요. 


 ...이제는, 눈이 잘 안 내리는 창원시가 정말 좋은 밥군입니다 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