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 11

멸망한 세상 속에서 - 8

신혁과 현아가 끌고 있는 각각의 카트에서는 크지는 않지만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신혁은 그 소리보다는, 자신의 카트를 현아에게 건낼 때 보였던 오르스의 그 경악한 듯한 눈빛이 더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엄밀히 따지면, 아니 대놓고 따져도 그녀는 물론 사람이 아니지만, 그녀가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녀는 누구냐, 가 더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오류를 굳이 정정하진 않았다. 신혁이 만나본 악마는 정말로 몇 안되기 때문에 단정지을 순 없으나, 자신이 본 오르스라는 그 악마에게서는 그야말로 귀티가 흘러넘쳤다. 한눈에 봐도 베어나오는 절도와 검정색 통일의 턱시도 등, 아마도 그렇게 낮은 직위의 악마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

살인범 K씨 - 5.

자정이 가까워져서인지, 슬슬 손님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조금은 멍-하게 노래를 흥얼흥얼거리며 차를 몰던 신혁은 길가에 멈춰섰다. 잠시 차 밖으로 나가서 바람이라도 맞으며 정신을 차려야 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아아, 피곤하네. 오늘은 슬슬 집에 들어갈까." 이미 평소에 벌던 것 이상으로 오늘은 돈을 벌었다. 유달리 피곤한 몸을 이끌고 무리하게 운행하기 보다는, 아무래도 조금 일찍 들어가서 쉬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드는 신혁이었다. 가볍게 몸을 스트레칭한 후, 다시 차에 몸을 앉혔을 때 그의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의 신호음이 들려왔다. 누구지, 하며 폰을 꺼내든 신혁은 액정 화면에 이씨 아저씨의 번호가 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시간에 왠 일로 이 아저씨가?' 임씨였다면 술이라도 한잔 하자..

살인범 K씨 - 4.

"그럼 내일 보입시다. 잘 가소." "예. 쉬세요." 사내는 주머니에서 이만원을 꺼내어 신혁에게 건내주고는 차에서 내렸다. 수달촌으로 오기 전 들렸던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것들을 담은 봉투가 부스럭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월촌에서 사내를 태운 후 그는 수달촌이 아니라 대형마트를 먼저 들려주길 원했고, 그 곳에서 그는 삼십분 가량 머물며 이것저것을 사 들고 온 것이었다(마트에 도착한 후 그는 또다시 이만원을 주었기 때문에 신혁으로서는 내심 즐거운 상황이었다). "아, 이거 하나 드소." "아, 감사합니다. 내일 뵐게요." 창문을 통해 사내가 건내준 음료수를 받아들고서 그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신혁에게 음료수를 건내준 사내는 이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달촌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가 괜한 ..

살인범 K씨 - 3.

신혁은 졸린지 연신 하품을 해댔다. 평소보다 세시간은 이른 하루의 시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벽 5시, 아직 해조차 뜨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차를 몰고 운행에 나선 것은 그 사내로부터의 전화 때문이었다. -신혁씨, 나 좀 태워주소. 어제 내린 곳에서 있긋소. 너무 이른 시간이 아닌가 싶었으나, 어쩌겠는가? 그에게 먼저 자신의 택시를 타달라고 부탁한 것이 자신이거늘.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고, 하소연을 할 일도 아니었다. 대신 새벽부터 일 나가냐며 은수의 졸린 투정정도는 들었지만 말이었다. 신혁은 차를 몰아 어제 사내를 내려준 장소로 향했다. 수달촌에 접어들은지 얼마 되지않아, 길거리에 서 있는 사내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신혁이 차를 멈춰서자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뒷자석에 몸..

살인범 K씨 - 1.

뭔놈의 꿈을 이렇게 꾸는건지;;; 지난 번에는 인류멸망이더니만 이번엔 연쇄살인마...;;; 등장 인물 이름은 '멸망한~'의 주인공 커플이...ㅋ;; 이건 그리 길지 않을 듯 하네요. '멸망한~'은 언제 끝낼 수 있으려나;;;? 그 마을은 난리가 난 상태였다. 마을 변두리에서 혼자 살던 김씨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의 상황통제로 보진 못했지만, 주민중 누군가 들었다던, 최초 발견자인 우편배달부의 말로는 집 내부는 그야말로 피범벅에다가 김씨는 의자에 묶인채 마치 고문이라도 당한 모습이었다고 했기 때문에 그 충격은 몇 배가 되었다. 김씨는 마을의 인기인이었다. 몇 해전 신혼이었던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음에도 남들 앞에서는 웃음을 잃지 않으며 살았던 그녀였다. 어느 누구보다도..

멸망한 세상 속에서 - 7

바닥에 주저앉은 신혁은 악마, 오르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지난 번 이 인간이 이 곳을 다녀갔을 때, 그 날 이 땅으로 올라오셨습니다." 오르스의 말에 신혁은 지난번 마트를 다녀갔던 날 자신이 봤던 장면을 떠올렸다. 엄청난 거체를 지닌, 압도적인 위엄을 지니고 있던 반인반마의 모습을 지녔던 악마. 징벌자.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신혁을 놔둔 채, 오르스는 시선을 돌려 현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고귀하신 분께서 어찌하여 인간과 함께 이곳에 들리셨는지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아, 그냥 먹을 것을 구하러 온 것이네." 그 말에 오르스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먹을... 것 말입니까?" "그렇네. 아무래도 지금 상태가 상태다 보니, 아무래도 이 세계의 음식을..

멸망한 세상 속에서 - 5

현아가 먼저 다가오는 것에 대해서 생각보다 은수의 거부감은 크지 않았다. 아니 그녀에게서 되려 묘한 기대감마저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신혁이이었다. 자신들을 이렇게 만들어버린 천사들에 대한 반발심 때문일까? '아무렴 어떤가.' 그랬다. 이유따위는 상관없었다. 신혁은 은수가 조금이라도 더 편한 환경에서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환영이었다. 아니, 천사만 빼고서는 환영이었다. 그가 사랑하는 은수가 힘들어하는 모습은 신혁 스스로에게도, 내색하진 않았지만 매우 큰 부담이었고 또한 어떻게 해줄 수 없음에 죄책감마저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들은 이곳을 보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이지. 생각보다 의외로 그런 장소가 이 나라에는 많은 것 같더군. 내가 본 것만 해도 근래들어 서너곳은 되었..

멸망한 세상 속에서 - 4

그녀로부터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신혁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는 타락 천사, 현아를 흘겨보며 생각했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멍하게 앉아 창 밖을 바라보던 현아 역시 신혁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절로 움찔하며 고개를 숙인다. 현아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왜 자신을 쳐다보았는지 물어보지는 않고,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와 함께 하기 시작한지 3일이 흘렀다. 갑자기 그들을 찾아온 그녀는 아무말 없이 그들의 보금자리에 눌러 앉았다. 이유같은 것은 말해주지 않았지만 신혁과 은수 중 누구도 현아에게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왜 왔는지, 어떻게 자신들을 찾았는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물어본다면 말해줄 것 같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현아를 두려워하는 은수가 기겁하..

멸망한 세상 속에서 - 3

은수를 감싸고 있는 신혁을 바라보며 말한 여인은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린다. 정말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세명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죽음을 각오했던 신혁은, 은수를 감싸고 있던 몸을 일으켜 여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은수는 아직까지도 잔뜩 겁에 질린 채, 쥐고있는 신혁의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쥐고 있었다. "누, 누구야, 당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신혁이 먼저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여인은 순간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말했다. "이걸 보고도 모르겠는가?"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앉은 그대로 날개를 펼친다. "처, 천사?" "천사? 천사라고?" 신혁의 말에 다시 한번 반문하며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펼친 날개를 되돌아 보았다. "아, 색..

멸망한 세상 속에서 - 2

어스름한 빛이 하늘을 밝히는 것이 창문을 통해 보인다.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커다란 만월은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신혁은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곁에는 은수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원래부터 잠이 많은 그녀였지만 그 사건 이후로는 더욱 잠이 늘었다. 아마도 그녀도 깨닫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깨어있는 시간을 줄이고 있는 것 같다고 신혁은 생각했다. 그 날 이후의 시간은 은수에겐 끝나지 않는 악몽과 같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던 신혁은, 짧은 순간 하늘을 지나가는 무언가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거렸다. 좁은 창 안으로 지나갔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는, 새인지 천사인지 알 순 없지만 하늘을 나르는 것에 대한, 공포스러웠던 경험으로 얻은 일종의 조건반사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