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문화 생활/쓰기.

살인범 K씨 - 2.

개구리C 2010. 10. 22. 01:14


 월촌.
 이곳 월촌으로 가고자 하는 외부의 손님들의 대부분은 인근 공단 쪽의 직원이거나, 그가 아니면 사회로부터 상처를 입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월촌의 대부분은 집창가로 이루어진 동내였다. 때문에 공단에서 일하며 홀로 나와있는 사내들이나, 혹은 어떤 형태로든 이 곳에 안착하고자 하는 이들이 대부분의 주민들이었다. 월촌과 인근 마을들과는 그렇게 거리차가 나지 않았지만, 거리라는 개념과는 별개로 따로 고립되어 살아가는 마을이었다. 아니, 고립되어졌다기 보다는 월촌의 주민들이 인근 마을과 교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보다 정확할지도.
 신혁은 자신이 태운 저 손님이 어느 쪽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사내의 복장이 공장 등에서 일한다고 보기는 힘들었고, 무엇보다 지금 시간이면 한창 일을 할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월촌의 주민들이라 보기엔 너무 깔끔한 차림세다.

 '뭐, 알게 뭐냐만은.'

 신혁은 속으로 피식 하고 웃었다.

 "4000원 나왔습니다."

 차를 세운 신혁은 태우고 있는 사내를 돌아보았다. 그는 지갑에서 만원짜리 한장을 꺼내며 신혁에게 건내주었다.

 "잔돈은 필요없소."
 "어, 아? 가,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신혁에게 만원을 건내준 사내는 곧장 차에서 내리며 문을 닫았다. 예상치 못한 차비에 잠시 떨떠름해 했던 신혁은 받은 만원을 돈가방에 집어넣으며 다시 차를 옆마을로 돌리기 위해 핸들에 손을 얹었다.

 "기사 양반."
 "헉?"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신혁은 깜짝 놀라며 옆을 바라보았다. 어느 사이엔가 사내가 운전석쪽 창문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내는 자신이 타고 있던 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거 명함 한장 주소."
 "아, 명함말입니까? 잠시만요."

 그의 말에 신혁은 손을 뻗어 명함 한장을 뺀 후 사내에게 건냈다. 받은 명함을 잠시 바라보던 사내는 아무렇게나 그 명함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은 후 입을 열었다.

 "나중에 돌아갈 때도 부탁하우. 잘 가소."
 "아, 예. 감사합니다. 연락만 주세요."
 "잘 가소."

 그리고는 사내는 몸을 돌려 월촌의 입구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그가 어느 정도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던 신혁은 차를 돌렸다.

 '뭐야, 좋은 사람이구먼.' 

 예상못한 수입에 기분이 살짝 좋아진 신혁은 흘러나오는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따라 흥얼흥얼거리며 차를 몰았다. 이씨, 임씨 두 아저씨들의 예상과, 그리고 자신의 예상과 달리 그는 '좋은 손님'이었다. 
 때문에 신혁은, 걷다 멈춘 채 그의 차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 사내를 미처 볼 수 없었다.
   
  
 그가 주로 활동하는 수달촌에는 대중교통편이 그리 많지 않았다. 수달촌을 경유하는 버스노선은 고작 하나고, 그나마도 하루에 네 번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공단건립이 끝난 이후로 수달촌에도 적잖은 인구 유입이 있었기 때문에, 적잖은 수의 택시가 하루의 일정시간을 수달촌에 투자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중 하나가 신혁이었다.

 "열하나, 열둘, 열셋, 열넷...... 흐음."
 
 이제 막 해가 지고 있는데 벌이가 꽤 된다. 신혁은 은근슬쩍 기분이 좋아졌다. 퇴근 시간이 되고 심야가 되면, 오늘은 평소보다 좀 더 돈을 벌어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갈 때 아이스크림 케이크나 좀 사서 들어가야겠네.'

 물론 그런 걸 사갔다간 동거중인 여자친구, 은수가 뭐 이렇게 비싼 걸 사왔냐며 노발대발할 것이 뻔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심 좋아하면서 먹어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잔소리야 좀 들으면 되는 것이고, 그걸로 앞으로 몇 일은 그녀의 심기가 편해진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그 때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네, 이신혁입니다."
 -안녕하소, 기사양반. 내요. 좀 데리러 오소.
 "예? 아아, 낮에 그. 곧 가겠습니다. 10분쯤 걸리겠네요."
 -알았수다.

 신혁은 건너편의 목소리가 낮에 월촌으로 데려다 주었던 그 손님인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낮엔 좀 찝찝하더니만은. 에라이, 간사한 마음아.'

 처음 그를 태웠을 땐 찝찝한 마음이 없잖아 있었건만, 지금은 그의 목소리가 내심 반갑기까지 하다. 신혁은 돈 때문에 순식간에 바뀐 마음에 스스로도 어이가 없긴 했지만, 어떻게 하나? 먹고 살려면 결국 돈이 있어야 하는걸. 
 시동을 건 신혁은 지체하지 않고 월촌을 향해 차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다지 월촌과는 멀지 않은 곳에 손님을 내려준 덕분에, 그가 있는 곳 까지 가는 데는 별로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월촌의 입구에 도착하자, 내려줬던 그 자리에 서있는 한 사내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낮에 자신이 태워준 그 사내였다. 그 앞에서 차를 멈추자 사내는 여전히 뒷 좌석의 문을 열고서 자리에 앉았다.

 "수달촌으로 갑시다."
 
 목적지만을 간단히 말한 후, 그는 다시 다소 멍한 눈빛으로 창 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뭐라 말을 걸까 했던 신혁이었지만, 그의 시선이 창 밖을 향하자 말을 되삼키고서는 차를 돌려 수달촌으로 향해 몰았다.
 수달촌으로 가는 동안 어떤 대화도 없었다. 낮에는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는데, 아니 되려 다행이다 싶기도 했는데 이번엔 왠지 이 침묵이 다소 부담스러운 신혁이었다. 결국 먼저 입을 열기로 작정한다.

 "수달촌에 이사오신 분이신가요? 이 동내에선 오늘 처음 뵌 것 같은데."
 
 그가 질문을 하자 사내의 시선이 창 밖에서 신혁으로 옮겨졌다. 백미러를 통해 사내를 보던 신혁은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다. 괜히 말을 걸었는가 싶은 생각이 갑자기 밀려든다.

 "...어제 왔수다. 여기에 전 아내가 살고 있어서 말이우."
 "아, 그러셨군요. 괜한걸 물었네요. 죄송합니다, 손님."
 "괜찮수."

 다시 대화가 끊긴다. 침을 꿀꺽 삼킨 신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머무르실 것인가요?"
 "? 왜 그런 걸 물어보는거요?"
 "아, 그냥 좀 궁금해서요."
 "거 참."

 사내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툭 던진 후,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일주일쯤 있다 갈거요."
 "그렇군요. 그럼 간간히는 뵙겠네요."
 "?"

 무슨 소린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 거린 사내는, 이내 신혁의 말을 이해하고서는 아아 하고 입을 열었다.

 "알았수다. 내 택시탈 일 있음 신혁씨 부르겄소. 됐소?"
 "아하하, 감사합니다."

 차마 말은 못하고 둘러대던 것을 사내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자 쑥쓰러워진 신혁은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 사내는 그를 보며 별 싱거운 사람 다 있군, 하고 작게 중얼거렸지만 신혁은 못 들은 척 하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에 차는 수달촌 내에 도착했다. 목적지에 도착한 사내는 지갑에서 다시 만원짜리 한장을 꺼내 그에게 건내주며 차에서 내리다가 잠시 멈칫하며 신혁을 바라보았다.

 "아, 명함 한장 더 얻을 수 있소?"
 "명함요? 예, 드려야지요. 근데 아까 가져가신 건 어떻게 하시고?"

 명함을 한장 뽑아 건내주며 물어보자, 사내는 흐 하고 다소 기분나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잃어버렸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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