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문화 생활/쓰기.

멸망한 세상 속에서 - 7

개구리C 2010. 10. 20. 00:09



 바닥에 주저앉은 신혁은 악마, 오르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지난 번 이 인간이 이 곳을 다녀갔을 때, 그 날 이 땅으로 올라오셨습니다."

 오르스의 말에 신혁은 지난번 마트를 다녀갔던 날 자신이 봤던 장면을 떠올렸다. 엄청난 거체를 지닌, 압도적인 위엄을 지니고 있던 반인반마의 모습을 지녔던 악마. 
 징벌자.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신혁을 놔둔 채, 오르스는 시선을 돌려 현아에게 물었다.
 
 "그런데, 고귀하신 분께서 어찌하여 인간과 함께 이곳에 들리셨는지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아, 그냥 먹을 것을 구하러 온 것이네."

 그 말에 오르스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먹을... 것 말입니까?"
 "그렇네. 아무래도 지금 상태가 상태다 보니, 아무래도 이 세계의 음식을 먹지 않고서는 몸이 버틸 수가 없더군."

 그녀의 말에 오르스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등 뒤로 한쌍의 검은 날개만을 제외하고는, 어딜 봐도 평범한 보이는 인간의 몸.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과연, 당신도 이끄는 자, 셨군요. 만나뵈어 영광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상체를 숙여 정중히 그녀에게 인사를 한다. 오르스의 인사에 현아 역시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입을 열었다. 

 "영광이라니, 별 말을. 아, 그러고보니."

 그제서야 무엇인가가 생각이 난 듯, 현아는 아직까지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신혁을 쳐다보았다.

 "언제까지 그렇게 앉아있을 생각인가? 먹을 걸 구해가야지."
 "어, 아, 네. 네, 그렇죠."

 신혁은 허겁지겁 바닥에 한 손을 짚으며 몸을 일으켰다. 일어선 이후에도 그는 다소 긴장 때문에 경직된 모습으로 슬그머니 현아의 뒤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우린 안에 들어가서 먹을 것을 들고올 생각인데, 자네도 같이 가지 않겠나?"
 "당신의 말씀이라면 당연히 따라야겠지요."

 그리고 현아는 곧장 몸을 마트 안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오르스 역시 그녀보다 한걸음정도 떨어져 따라 들어갔다. 이 상황에 크게 당황해 있던 신혁은 한참동안 멍하니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카트를 잡아 끌면서 그들의 뒤를 따라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트 안은 어두웠지만, 어둠 속에서 신혁이 그들의 모습을 찾는 것은 결코 어려지는 않았다. 저 앞쪽에 오르스의 모습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도 선명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손전등을 켜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잠시 고민하던 신혁은 이내 들고있던 것을 카트 안에 내려놓았다. 어차피 길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르스의 모습이 보인다면 밤하늘의 미세한 빛만으로도 굳이 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따라잡은 신혁이지만, 여전히 뭐라고 말을 꺼내지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이 악마가 위험하지 않다고는 머리로야 알고있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머리만으로는 단시간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날개를 제외하고는 인간이나 다름없는 외면을 지닌 현아조차도 지금까지의 관계가 되기위해 꽤나 시간이 걸렸다.

 "신혁, 이 분께 인사를 드리게."
 "예?"

 갑자기 들려온 자신의 이름에 신혁은 앞서 걷고있는 타락천사와 악마를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보이는 그녀의 실루엣은, 걸음을 멈춘 채 자신을 돌아보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이신혁이라고 합니다."
 "음. 또 잘못 전달된 모양이군. 자기소개가 아니라 감사의 인사를 드리라는 이야기였다네."
 "예?"

 신혁은 저도모르게 말대꾸를 하며 현아를 바라보았다. 깜짝 놀라는 그를 보며 현아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자네와 은수가 그 곳에서 지낸 몇 개월동안, 자네들을 지켜주신 분이시라네. 그정도면 고맙다고 인사를 하기에 충분하지 않겠나?" 
 "저, 정말입니까? 저는 이 분을 이번에 처음 뵈었는데."

 그 말에 오르스가 피식 하고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린다. 현아는 여전히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보지 못했다고 해서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나. 아무리 밤이라고 해도, 한 곳에서 꽤나 긴 시간을 머물면서 들락날락 거렸던 것이 천사들에게 들키지 않은 것을 단순히 운이 좋다고 생각했던건가?"
 "......"

 그녀의 말에 신혁은 꿀먹은 벙어리마냥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현아의 말대로 운이 좋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거처에 대한 설명을 현아에게서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자네와 은수가 머물고 있는 곳 역시, 여기 오르스의 힘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더군."

 단순한 행운만이 아니었다. 저런 소리까지 들었는데도 입을 닫고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 자격미달이다. 

 "그, 그간의 보살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에 제가 어떻게 보답을 해야할지."
 "감사의 인사는 징벌자님과 군주님들께 드리도록 해라. 인간. 난 그분들의 명령에 따른 것에 불과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징벌자님과... 군주님들요?"

 다소 멍한 그 되물음에 오르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 뿐, 더이상 입을 열지는 않는다. 당황하는 신혁을 보며 현아가 다시 입을 열면서 앞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너무 딱딱하게 굴지는 말게. 수고한 것은 자네니 마땅히 감사받아야하지 않겠나? 그리고 신혁, 이미 올라오신 징벌자님이라면 모르지만 군주님들을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니까. 그냥 마음 속으로만 감사드리고 있게나."
 "아, 예."

 떨떠름하게 신혁은 대답했다.
 신혁은 볼 순 없었으나 여전히 웃고 있는 것 같은 현아의 목소리가 이어 들린다.

 "혹시 아나? 언젠가 만나뵐 수 있을지도. 그 때는 인사를 드리게나."  
 
 잠시 후, 한명의 인간과 두명의 인간이 아닌 존재들은 마트 내의 식료품 코너에 도착하였다.
 이러한 인원 구성 속에선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는 신혁으로서는 이곳까지 걸어오는 시간도 상당히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할 일이 생기자 보다 빠르게 걸음을 옮기며 그들을 앞서 나가며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카트 안으로 집어넣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른 환경과 생각들 때문인지, 카트가 먹거리로 가득 차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아, 그러고보니 카트를 한대 더 끌고와야 했는데."

 자신이 끌고온 카트가 먹을 것으로 가득 차자 그제서야 그 사실이 떠오른 신혁이었다. 카트 한대만으로는 몇일 버틸 수 없었기 때문에, 현아 역시 카트 한대를 끌고올 예정이었던 것을 오르스의 등장으로 깜빡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신혁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뒤쪽에서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현아를 바라보았다.

 "이미 끌고 왔다네. 뒤쪽에 몇 대 버려져 있더군."

 그가 돌아보자 현아가 입을 연다. 어느 샌가 그녀는 두 손으로 카트를 끌며 신혁을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서둘러 이것저것을 챙기고 있던 신혁이었기 때문에 현아가 카트를 끌고오던 것을 눈치채지 못한 신혁이었기 때문에, 살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 후 자신도 모르게 현아의 뒤쪽에서 따라 걷던 오르스를 쳐다보았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말하며 카트를 끌고가는 현아를 바라보는 오르스의 표정이 굉장히 미묘하다.

 "자네의 카트를 나에게 주게나. 난 뭘 담아야할 지 아직은 잘 모르겠군."

 아직은, 이라. 저 말은 다음에도 따라오겠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 신혁의 생각을 오르스 역시 했던지, 현아의 말이 끝나자 오르스의 표정은 한층 더 미묘해졌다. 어처구니 없는 무언가 경악한 것 같으나 차마 내색하지는 못하고 있는 그런 느낌?
 신혁은 아마도 자신의 생각이 크게는 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속으로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오르스의 눈치를 보며 눈을 질끈 감고서 가득 차버린 자신의 카트를 현아에게 건낸다. 
 신혁은 내심 각오를 다지며 입을 열었다.

 "여깄습니다." 



 가끔 다음뷰로 발행을 해도-_-; 발행이 안되는 경우가 있더군요 'ㅁ'
 그럴 땐 다음뷰로 들어가서 올리기는 하는데
 왜 그런걸까요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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