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문화 생활/쓰기.

멸망한 세상 속에서 - 4

개구리C 2010. 10. 11. 01:07


 그녀로부터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신혁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는 타락 천사, 현아를 흘겨보며 생각했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멍하게 앉아 창 밖을 바라보던 현아 역시 신혁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절로 움찔하며 고개를 숙인다. 현아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왜 자신을 쳐다보았는지 물어보지는 않고,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와 함께 하기 시작한지 3일이 흘렀다. 
 갑자기 그들을 찾아온 그녀는 아무말 없이 그들의 보금자리에 눌러 앉았다. 이유같은 것은 말해주지 않았지만 신혁과 은수 중 누구도 현아에게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왜 왔는지, 어떻게 자신들을 찾았는지 궁금했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물어본다면 말해줄 것 같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현아를 두려워하는 은수가 기겁하며 그를 말렸기 때문에 신혁 역시 물어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악마, 아니 타락 천사라고는 하나 현아 역시 먹고 마시는 것 등 일상적인 것은 사람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되려 신혁보다도 먹는 양이 더 많았다. 
 3일 쯤 되어 적응을 좀 했는지, 신혁은 더이상 현아가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다. 물론 미지의 존재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은 남아있으나, 공포는 아니었기 때문에 대하기가 어렵기는 하나 그것이 생활에 있어서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천사를 봤을 때에 비해서야 뭐.'

 그렇게 생각하며 신혁은 작은 움직임으로 고개를 내젖는다. 천사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자행했던, 그들이 말했던 '정화'는 지금 생각해도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다. 자신들을 노렸었다면, 신혁과 은수 역시 속절없이 '정화'되었을 것이나, 그 장소에 있던 인구에 비해 워낙 적은 천사들이었기 때문에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도망쳤던 기억, 뚜렷히 기억하는 것은 오로지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과 잡은 은수의 손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뿐이었다.
 그때의 생각따위는 하지 않는게 정신 건강에 좋지만은 신혁은 현아의 검은 날개를 보면 그 일이 저절로 떠올랐다.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아마 은수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 역시 지금쯤은 안정을 되찾았어야 했으리라.

 "이곳에 온 것이 거슬리는나, 신혁?"
 "아, 네?"
 
 멍하게 창 밖을 바라보던 현아가 갑자기 신혁에게 질문을 했다.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던 신혁은 저도 모르게 되물어봤고, 그런 그를 현아는 슬쩍 웃으며 쳐다보았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이 거슬리냐고 물었다."
 "아뇨. 아닙니다. 갑자기 왜 그런 질문을?"
 "네가 계속 쳐다보았기 때문이지. 썩 좋은 기분은 아니야. 그리고 내가 온 뒤로 너희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거의 보지 못 했기도 하고. 아니면 원래 그렇게 말수가 적은 인간들인가, 너희 둘은?"
 "......"

 그녀의 말에 신혁과 은수는 저도 모르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현아가 그들에게 합류한 이후로 그들이 나눈 대화는 손으로 꼽을만큼 적은 횟수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가 꼭, 현아가 왔기 때문은 아니었다. 신혁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면서 답했다.

 "쳐다본 것은 죄송합니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대화는,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예요."
 "그런가?"

 신혁은 현아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록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다지만, 신혁은 은수의 손을 놓지는 않았다. 자리를 일어서야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내내 은수의 곁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고, 서로의 의도는 그것만으로 대부분 전달이 되었다. 
 그 날 이후 그들이 겪은 시간은, 서로의 사이를 극도로 가깝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었다.

 "헌데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건지?"
 "흠."

 신혁의 질문에 현아는 작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래도 조금은 편견이었나보군."
 "무엇이 말입니까?"
 "내가 봐왔던 인간들은 뭐라도 말을 하지 않으면 답답해 미칠 것 같아 보였는데 말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나보군."
 "아아."

 신혁은 그녀의 말에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잠시, 말을 할까말까 고민을 잠깐 해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럴 수 밖에요."
 "무엇이 그럴 수 밖에 없다는거지?"

 자신의 손을 쥐고있는 은수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긴장하고 있는 것은 신혁 역시 마찬가지지만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떤 사람이 그 날개를 보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놀랄 수 밖에 없겠죠. 너무 놀라서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면, 대부분 반대가 아닐까 합니다만."
 "아아, 그런건가. 확실히 그럴 수 있겠군. 인간들은 우리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으니 당연히 궁금하겠지."

 자신의 의도와는 뭔가 미묘하게 다른 이해를 한 것 같지만, 신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렴 어떤가? 일단은 그들 사이에서 다시금 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리고 현아가 대화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신혁은, 그 짧은 대화에서 현아가 대화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물론 그녀가 이전에 이야기한다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기 때문에, 내심 그를 신경쓰고 했던 말들이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것이지만.

 "인간들을 만날 때 날개를 숨기셨었습니까?"
 "아니. 내 기억에서는 그런 적은 없군."
 "거 보세요. 그 때문입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은수의 팔꿈치가 신혁의 옆구리에 꽂혔다. 고개를 숙인 채 묘한 표정으로 납득하고 있는 현아였기 때문에 그 장면을 보지는 못 했지만, 사실 긴장하고 있는 것은 신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정도의 말까지 그녀가 받아줄지 안 받아줄지는, 신혁 역시 잔뜩 맘의 준비를 하며 내뱉은 것이지만 모르는 것은 당연히 똑같았다. 
 혹시라도, 만의 하나라도, 그녀가 자신을 건방지다고 여기기라도 한다면? 같이 지낸 동안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되려 상당히 친절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던 현아기는 하나, 신혁과 은수는 사소한 것 하나에도 목숨을 걸어야하는 약자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긴장은 전혀 신경쓰지도 않은 현아는 고개를 들며 신혁을 바라보았다.

 "과연, 그런거였나. 하기사, 인간에게는 놀랍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이 날개는 숨겨야할 이유가 없다."
 "예. 세상이 이렇게 된 이상 의미가 없지요."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다. 설령 세계가 이렇게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럴 이유는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현아는 자신의 등에 달린 한쌍의 날개를 펼친다. 신혁과 은수는 동시에 몸을 움찔거렸다. 
 현아는 한쪽 날개를 자신의 몸 앞쪽으로 접으며, 한 손으로 날개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이 날개는 내 존재의 기록이자, 긍지이며, 또한 자랑이다. 다른 이들의 반응 따위때문는 숨겨야할 이유가 되지 않아."
 "그, 그런가요. 죄송합니다."

 현아의 목소리에서 뭔가 모를 분위기가 풍기자 신혁은 기겁하며 사과했다. 그와 함께 은수도 고개를 푹 숙였다. 뭔가 기분을 나쁘게 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아는 다시 날개를 등 뒤로 접으며 말했다.

 "아니, 괜찮다. 사과할 것은 아니야. 거기다 먼저 질문을 한 것은 나였으니. 네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그 말에 신혁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 보았다. 
 현아는 미소지은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쨌거나, 만약 너희들이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싫어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면 함께 대화나 나누지 않겠는가. 혼자면 모르겠는데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이정도까지 조용히 있던 것은 처음이라서 말이야." 

 신혁은 그 말을 하면서 현아의 눈빛에 묘한 기대가 어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왜 그녀가 멍하게 창 밖을 바라보고만 있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심심했구나.'



 이미 이 타락천사 캐릭터는 성격 조절에 있어서 조금 고삐를 놓쳐버린 느낌?
 근데 왠지 푼수?캐릭터로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긴 해서 느긋하게 놔주려고 합니다 ㄷㄷㄷ... 

'나름대로 문화 생활 > 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멸망한 세상 속에서 - 6  (3) 2010.10.18
멸망한 세상 속에서 - 5  (5) 2010.10.16
멸망한 세상 속에서 - 3  (1) 2010.10.07
멸망한 세상 속에서 - 2  (3) 2010.10.06
멸망한 세상 속에서 - 1. (가제)  (3) 2010.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