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문화 생활/쓰기.

멸망한 세상 속에서 - 2

개구리C 2010. 10. 6. 00:51



 어스름한 빛이 하늘을 밝히는 것이 창문을 통해 보인다.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커다란 만월은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신혁은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곁에는 은수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원래부터 잠이 많은 그녀였지만 그 사건 이후로는 더욱 잠이 늘었다. 아마도 그녀도 깨닫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깨어있는 시간을 줄이고 있는 것 같다고 신혁은 생각했다. 그 날 이후의 시간은 은수에겐 끝나지 않는 악몽과 같기 때문이었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던 신혁은, 짧은 순간 하늘을 지나가는 무언가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거렸다. 좁은 창 안으로 지나갔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는, 새인지 천사인지 알 순 없지만 하늘을 나르는 것에 대한, 공포스러웠던 경험으로 얻은 일종의 조건반사였다. 

 '망할 천사놈들.' 

 속으로 그는 욕지기를 내뱉는다. 소리내어 말했다간 은수가 깨기 때문이었다. 잠은 늘었지만 불안 때문인지 충격 때문인지 깊은 잠은 거의 들지 못하는 은수였기 때문에 작은 소리에도 잘 깨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밤의 시간이 끝나 하늘은 푸른 빛을 가득 채우며 아침을 맞이했다. 과거엔 쉽게 보기 힘든 맑고 깊은 아름다운 하늘이다. 하지만 저 하늘 아래서 생활을 즐길 수 없는 그들에겐 그저 슬픈 하늘일 뿐이었다.
 그 순간 신혁은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렸다. 다시 창문 안으로 무엇인가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았다. 창 밖으로 불과 수십미터 떨어진 곳에서 천천히 지나간 그것은, 사람만큼 거대한 한 쌍의 날개를 지닌 천사였다.

 '우릴 찾는건가?'

 그들이 머물고 있는 지금의 장소에 정착한 것은 불과 반년 전, 그 이전의 시간은 그야말로 치가 떨리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인간을 사냥하는 천사들로부터 끊임없는 도주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신혁은 고개를 돌려 잠들어있는 은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깨울지 말지에 대한 잠깐동안의 갈등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그는 깨우지 않기로 결심했고, 은수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몸을 눕혔다. 그리고는 이불을 끌어올려 자신과 그녀의 몸을 덮었다.
 눈치다면 도망치기는 힘들다. 혼자라면 그나마도 모르겠지만은 은수와 함께라면 그 가능성은 영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 있어?"

 깨지않도록 천천히 몸을 눕혔음에도 불구하고 신혁의 미동에 잠에서 깬 은수가 졸린 목소리로 물어온다. 그 물음에 신혁은 씨익 웃으며 은수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을 해주며 말했다.

 "아냐, 자자."
 "...응."

 눈을 떴을 때 그녀만 혼자이거나 신혁 자신만이 남아있는 것은, 그들 둘 모두 원하지 않는 결과다. 눈을 뜰 때는 둘이 함께거나, 혹은 둘 모두 눈을 뜨지 못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품을 파고드는 은수를 감싸안으며 신혁은 눈을 감았다. 

 
 여인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비록 전기가 끊겨 빛이 들어오지는 않았으나, 건물이 호텔인 덕에 방의 내부 구조는 꽤나 화려한 편이었다. 돈 내고 묵으려고 했다면 적잖은 액수가 깨졌으리라.
 그 속에서 그녀는 침대 위에 누워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서 여인은 왜 그들이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가슴 한켠에 드는 안도와 함께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마음을 놓았기 때문일까? 갑자기 피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여인은 더이상 그에 저항하지 않았고,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신혁은 자신을 건드리는 은수의 손길에 잠을 깼다. 졸린 눈으로 무슨 일이냐는 듯 은수를 바라보자, 시퍼렇게 질린 그녀의 얼굴이 들어온다. 순식간에 잠이 달아난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려고 하는 순간, 은수의 손이 먼저 그의 입을 막았다. 목 끝까지 올라와있던 말을 되삼키자 은수는 다른 한 손으로 방 한쪽 구석을 가리킨다.
 그 손을 따라 옮겨진 시선의 끝에는, 벽에 기대어 앉은 채 잠들어 있는 한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쪽으로 달려있는 날개같은 형상이 보인다.
 신혁의 얼굴도 공포와 긴장으로 딱딱히 굳어졌다.
 신혁은 조심스럽게 창 밖을 바라보았다. 꽤나 오래 잤는지 하늘엔 붉그스름하게 땅거미가 져있었다. 비교적 안전한 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그는 침대 아래에 둔 야구배트를 천천히 찾기 시작했다. 손 끝에 딱딱한 야구배트의 감촉이 느껴지자 그것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그 순간이었다.

 "고작 그런 걸로 뭘 하겠다는거냐, 인간아."

 그 순간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쥐고있던 야구배트를 다시 땅에 떨어뜨린다. 최근의 경험들로 얻어진 습관덕에 소리내어 비명을 지르진 않았지만 자신에게 붙어있는 은수의 손에 급격히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신혁은 상체를 일으키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끝이다!'

 비록 죽는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눈으로 은수의 죽음을 볼 순 없었다. 소용없다 하더라도 몸으로 그녀를 막아줄 수 밖에 없는 신혁이었다. 그 날 이후 1년간 공포와 긴장으로 점철된 시간들이 마침내 끝을 맺었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 한켠에는 그런 힘든 시간들이 드디어 끝났음에, 그리고 바라던 대로 은수와 함께 끝을 한다는 것이 미약하게나마 기쁨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렀지만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꼭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떠 낯선 여인을 바라보았을 때, 신혁은 어이없다는 듯 자신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뭘 하는거지?"

 여인은 신혁과 은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신혁이 느낀대로, 그녀는 최후를 각오했던 그들의 모습에 어이없어하고 있었다.


 
 이전에도 밝혔지만, 이 글은 의도적으로 퇴고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최대한의 맞춤법 등에 관련한 퇴고는 하고 있습니다만, 내용 자체에 대한 퇴고는 일절 하지 않기로 해서-_-;;;;;;;
 생각하고 있는 제어대로 갈 수 있을지, 아니면 제멋대로 튀어나갈지 궁금하기도 하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