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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상 속에서 - 3

개구리C 2010. 10. 7. 01:49



 은수를 감싸고 있는 신혁을 바라보며 말한 여인은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린다. 정말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세명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죽음을 각오했던 신혁은, 은수를 감싸고 있던 몸을 일으켜 여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은수는 아직까지도 잔뜩 겁에 질린 채, 쥐고있는 신혁의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쥐고 있었다.

 "누, 누구야, 당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신혁이 먼저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여인은 순간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말했다.

 "이걸 보고도 모르겠는가?"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앉은 그대로 날개를 펼친다. 

 "처, 천사?"
 "천사? 천사라고?"

 신혁의 말에 다시 한번 반문하며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이 펼친 날개를 되돌아 보았다. 

 "아, 색이 확인이 잘 안되는건가. 그 자리에서는? 눈이 나쁜 인간이군."

 여인은 귀찮다는 듯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단지 몸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신혁과 은수는 크게 몸을 움찔거렸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반응에 상관없이 창가쪽으로 걸어간 여인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 불그스름해진 햇빛쪽으로 자신의 날개를 들이밀었다. 

 "이래도 내가 천사로 보이는가?" 
 "...검은 색?"
 "그래. 검은 색이다."

 그녀의 답변에 신혁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잊었다. 

 "너희 인간의 단어로는, 그래. 타락 천사라고 하더군."

 여인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또다시 방 안은 침묵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좀전의 공포와 경악으로 뒤섞인 침묵이 아닌,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그런 침묵. 그런 침묵이 싫은건지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잘도 이런 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군. 알고서 이곳에 숨어있었나?"

 전기가 끊긴 방은 매우 어두웠지만, 이상하게도 신혁과 은수는 그녀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어둠과는 전혀 별개로 말이다. 그 기묘한 장면에 잠시 넋을 잃고있던 신혁은 움찔하며 여인을 바라보았다.

 "뭘 말입니까?"
 
 천사가 아님을 깨닫고서는 확연히 긴장이 많이 풀린 신혁이었다. 때문에 그녀의 질문에 되려 반문하는 여유까지 생겨있었다. 
 그 말에 여인은 다시 한번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 건물이 어둠으로 둘러쌓여 있는 걸 모르고 들어온거냐? 운이 좋은 인간들이군."
 "어둠?"

 뜻모를 여인의 말에 신혁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게 뭔가요?" 
 "의미가 이상하게 전달되는건가? 흐음. 비슷한 단어는 잘 모르겠구나."

 계속 이해하기 힘든 말만을 내뱉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변은 생각보다 친절하게 잘 해준다.
 뭔가 묘한 기분이 든 신혁은 뭔가 생각하는 듯한 얼굴을 하는 타락천사를 바라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검은 날개를 제외하면 자신보다도 어려보이는 평범한 아가씨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런 모습이었지만, 그녀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확연히 인간과는 달랐다.
 카리스마? 아니다. 저 여인 그 자체가 자신보다 위에 있는 그런 존재감이었다. 
 바로 그런 느낌이 감히 말을 놓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단어로밖에 너희에게 전달되지 못한다는 점, 이해하기 바란다. 말 자체야 상관없지만은 단어의 선택은 꽤나 번거롭구나."
 "예?"

 또다시 저도 모르게 되물어보고는 저도 모르게 움찔거린다. 왠지 예의에 어긋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이 와중에도 그런 것을 떠올리는 자신의 모습에 신혁은 스스로에게 어처구니없음을 느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인가, 너희 둘은. 여태 살아있는 것이 용하군. 행운의 여신에게서 사랑을 받는 모양이구나."

 여인은 의자에서 일어나 신혁과 은수를 있는 침대 위에 몸을 앉혔다. 갑작스러운 자리 이동에 은수는 또다시 흠짓하며, 아직까지도 겁먹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은수를 보며 여인은 편안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그리 겁먹지 않아도 된단다. 어린 인간아. 우리가 너희 인간들을 위해 싸움을 하고 있음은 너희들도 이제는 알고 있을 터. 근데도 그리 겁을 먹어서야 우리가 섭섭하지 않겠느냐." 
 "죄, 죄송해요."

 그녀의 편안한 미소 덕분일까? 마침내 은수가 입을 열었다. 해가 완전히 진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은 은수였다. 신혁은 은수가 잡고있는 자신의 손에서 느껴지던 긴장감이 조금은 풀렸음을 깨달앗다.

  "그러면 하던 말을 계속 할까. 보아하니 너희 두명은 아무 것도 모르는 모양이니, 조금은 설명을 해줘도 나쁘진 않겠구나. 너희도 괜찮겠지?" 

 그녀의 말에 신혁과 은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날 이후, 이곳에 자리잡은 이후에는 서로간의 대화 이외엔 어떤 이와도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모르는 것 투성이다. 특히나 은수는 그에 관련된 이야기 자체를 꺼려했기 때문에 신혁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스스로 궁리해볼 수 밖이었다.
 그런 궁금증에 대해 타락 천사가, 장본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이야기를 해준다고 하니 어찌 긴장되지 않을 수 있을까?

 "우선 너희 인간과 우리들과의 의사소통부터 이야기를 해보자구나. 너희들은 어찌 우리같은 존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느냐?"
 "궁금했습니다."

 여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혁이 입을 열었다. 그가 너무도 빨라 은수가 깜짝 놀라며 쥐고있는 손에 힘을 줄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여인은 아무 상관이 없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은 우리와 너희 인간들이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자 여인은 친절하게도 설명을 덧붙여주기 시작한다.

 "너희 인간들은 서로의 언어를 사용하며 의사소통을 하지. 만약 언어가 다르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언어를 배우던가, 아니면 제 3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고. 그렇지 않느냐?"
 
 신혁과 은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우리와 너희 인간들과의 의사소통은, 그런 두뇌의 처리가 아니라. 뭐랄까, 음. 마음? 영혼? 그런 보다 정신쪽인 부분에서의 교류이기 때문이지."
 "텔레파시같은 것인가요?"
 "텔레파시라. 그래, 그런 단어로 설명하는 것이 더 편하겠구나. 물론 우리들에게도 너희 인간처럼 고유의 언어가 존재는 하지만, 당연히도 너희들이 알아들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의미하는 바는 뇌가 아닌 인간 그 자체에게 언어가 아닌 의미로 전달이 되는거지. 의식하지 못하는 자동번역기같은 것이랄까?"

 신혁과 은수는 긴가민가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에도 제한은 있단다. 듣는 쪽, 그러니까 너희들이 우리가 의미하는 것의 표현 가능한 단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 만약 모른다면 아까처럼 이상한 단어가 나오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편하기는 하지만 가끔씩은 꽤나 불편한 점으로 작용하기도 하지." 
 "그렇군요."

 그제서야 이해한 신혁은 문득 궁금한 점이 떠올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근데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저희에게 해주시는거죠?"
 
 그의 질문은 은수 역시도 내심 궁금했던 점이었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과연, 인간의 호기심은 죽음과도 맞닿아있다고 하더니. 그 말 그대로군. 아, 죽이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된단다."

 자신의 말에 은수가 사색이 되어 몸을 움크리자 여인은 씁쓸히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이어 입을 열었다.

 "그 이유는 내가 타락한 천사이기 때문이지. 인간의 눈으로야 악마와 똑같겠지만 말이다. 타락한 천사와 악마는 분명 다른 존재지만, 여기서는 그다지 상관없기도 하겠구나."

 여전히 사족이 길다, 라고 신혁은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그런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옛 이야기나 소설같은걸 읽어보지 않았느냐? 원래부터 악마는 인간에게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 왔었다. 어찌보면 본능같은 걸지도? 인간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우리들은 말을 꽤나 많이 하는 것 같았는데, 내가 틀렸는가?"   
 
 여인의 말에 신혁은, 자신이 보고 읽은 영화나 소설 속의 악마를 떠올려보았다.
 그러고보면 확실히 그랬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영화든 소설이든, 그 속에 등장한 악마는 이상하게도 물어보지 않은 것도 주인공들에게 알아서 떠들어댔고, 상당히 높은 확률로 자신이 내뱉은 말 때문에 퇴치당하기도 했었다.
 어딘가 이상한데, 묘하게 납득이 간다.
 그런 생각을 하며 슬쩍 은수를 바라보니 그녀 역시도 꽤나 미묘한 얼굴로 바뀌어있었다. 아마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 신혁은 생각했다.
 은수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의 장르가 바로 판타지 계열이란 것을 알고있기 때문이었다. 

 "그 속에서도 나는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뿐이고 말이다."

 그녀가 그렇게 덧붙이자 신혁과 은수는 그 와중에도 동시에, 상당히 어처구니없으면서도 납득해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그럼, 조금은 긴장도 풀린 듯 하니 슬슬 통성명을 해보도록 하지. 내 이름은 이 현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몸의 주인의 이름이지만. 진짜 이름은 말해봐야 너희가 제대로 전달되지도 않을 것이니 그다지 필요가 없을 것 같구나."  

 여인, 타락한 천사 현아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호기심은 죽음과 맞닿아있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고 공감하는 말입니다. 물론 죽을 정도는 아니고;;
 ...공포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지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