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군의 축빠 이야기/그리고 축구.

뚝섬돔구장&상암월드컵경기장 건설 비하인드 스토리 (퍼옴 글)

개구리C 2010. 9. 29. 00:23
 이 글은 파이낸스투데이 K보드에 "게르트"님이 올리신 글입니다.

 블로깅 시작하면서 궁금했지만 그냥 지나쳤던 사실들에 대해 간간히 찾아보는 중인데, 게르트님께서 잘 정리해주신 글이 있군요. 다른 내용의 글도 보이긴 했지만, 가장 잘 정리된 글이라 퍼왔습니다.

 당시 일의 진행에 대해서는 지식이 그리 깊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축구를 넘어 상당히 다방면으로 연결된 사항이라 섣불리 작성할만한  내용이 아닌터라 퍼옴으로 대체를.

 (직접 쓰는 글 위주의 블로그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좋은 글이 있다면 퍼오는 것에 대해서 망설이진 않을
-_-; 생각입니다. 물론 그 양에 대해서는 조절과 자제를 해야겠지만요.)

 작성자께서 축구 팬이신 만큼 어느정도의 감정이입이 안될래야 안될 수 없는 사항이고, 좀 민감한 사항인만큼 약간의 판단을 곁들여서 읽으셔야 할 듯 합니다.

 야구 팬분들이 보시기엔 다소 거북할 수 도 있으나, 이전에 이런 사실이 있었다 정도로 생각하며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나저나, 삿포로 돔 구장 이미지 몇 장 찾아봤는데, 좋긴 좋더군요 ㅡㅡ;;;;; 비싼 값은 하는데, 너무 비싼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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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암 월드컵 경기장>

 당시 서울시(시장 조순) 내부에는 월드컵을 위한 대규모 축구전용구장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 단 뚝섬에 돔구장을 짓는 조건이라면 월드컵 때에만 축구장으로 쓸 수 있는 시설을 허용한다는 방침이 시장 모르게 세워져 있었고 그 정책의 핵심에 있던 자가 강덕기(당시 서울시 행정부시장)였습니다. 강덕기 외에 서울시 녹지국장 등 대규모 운동시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의 인허가권을 쥐고 있던 공무원도 한 패거리였습니다.

 이 자들은 서울시 공무원으로 들어와 잔뼈가 굵은 자들인데... 시장을 제치고 담당업무에서 결재권을 갖고 있었던 자들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 조순 시장과 관련된 사항은 뚝섬에 돔구장을 지을 때 그 진입로를 서울시 예산 1700억원으로 지어주느냐, 아니면 진입로 뚫는 것도 LG가 주축이 된 '서울돔21'이 부담하느냐 하는 것 정도였습니다. (강덕기는 부시장 은퇴 후 LG 서울돔21 추진본부의 고문으로 취직합니다)


 월드컵 개최도시로 확정이 된 서울시의 경기장에 대한 방침은 서울에서 월드컵 하려면 잠실운동장을 리모델링해서 쓰든지 아니면 뚝섬에 돔구장 짓고 월드컵 때에만 축구장으로 사용하되 대회 후에는 무슨 시설로 쓰이건 상관 않겠다...이런 거였습니다.

 문제는 비용이었습니다. FIFA의 시설기준에 맞추어 잠실을 개보수하는 데 드는 비용(2500억원 이상)이 경기장을 신축하는 것(2000억원)보다 더 많이 든다는 거죠. 서울시는 이 기회에 노후화 되어가는 잠실운동장을 새롭게 개보수해보자...축구장을 새로 지으면 잠실의 용도가 더 떨어지니까 허용할 수 없다, 돔구장 건설에 서울시비가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까 적은 비용으로 월드컵 개최하는 거 아니냐...이런 걸 명분으로 내세웠던 거죠.


 사실 돔구장 건설은 야구계에서 90년대 초부터 꾸준히 나왔던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국제대회도 없는 야구에서 서울에다 엄청난 시설을 지으면서 정부와 서울시측에 도움을 요구할 명분이 미흡했고 막대한 건설비를 기업이 전담한다는 것도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그걸 지어도 기대한만큼의 수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죠. 월드컵 유치단계에서 일본과 경쟁이 치열할 때, 이홍구씨가 위원장으로 있던 한국 유치위원회에서는 급한 김에 LG측에서 짓겠다는 돔구장을 월드컵용 경기장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계획서를 FIFA에 제출한 적 있습니다.

 유치위원으로서 LG측의 입장을 대변하는이가 구평회씨였는데, 그는 LG 그룹의 원로격인 인물이었습니다.(현 구본무 회장의 조부 항렬) 지금 생각해도 멍청한 이들이 월드컵위원회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본과 경쟁에서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어떻게 월드컵을 야구장 건설계획의 빌미로 깔아줄 수가 있단 말인가요...

물론 LG측에서는 뚝섬에 돔구장을 짓고 대회 후에는 야구장으로 쓰겠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월드컵 용으로 짓는 다목적 체육문화시설이라고만 강조했죠. LG에서는 서울시의 협조(!)를 거쳐 시중의 여론을 돔구장 건설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었어요. 결국 LG는 서울시와 돔구장 건설계약을 체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월드컵축구대회가 야구전용구장 건설에 들러리로 전락하게 될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최대의 걸림돌은 건설비였습니다. 96년 당시의 계산으로도 1조원이나 되는 엄청난 비용이었습니다. LG에서는 도저히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서울시와 막후협상을 시도합니다. 그것은 뚝섬에 LG(당시는 LG가 GS와 분리되기 전임)의 자금으로 돔구장을 짓되, 돔구장 이외의 시유지(약 5만평, 현재는 이 땅이 '서울숲'이라는 이름의 공원이 되어있음)를 수의계약으로 불하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서울시 소유의 땅을 시가보다 훨씬 싼값에 인수하여 거기에 아파트와 유락시설을 지어 분양해서 돔구장 건설비를 충당하겠다...이런 계산이었던 거죠.


 돔구장 건설이 급물살을 타게 되었을 때, LG 구본무 회장의 결정적인 패착이 드러나면서 돔구장이 조순시장의 정치생명을 위협하는 사태로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애초 LG에선 돔구장을 개폐형으로 수용인원 6만명 이상의 천연잔디 구장으로 짓겠다고 서울시와 계약을 했는데, 일이 잘 풀리는구나 싶어 방심을 한 것인지 말을 바꾸어 수용인원 5만으로 축소하고 밀폐형으로 지어 월드컵 때는 축구경기를 하고 대회 후에는 야구장으로 활용하겠다는 안을 확정지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축구협회에서 본격적인 반대의견이 머리를 들게 됩니다.(돔구장에서 월드컵 개막전을 하기로 했다는 서울시의 발표문을 접한 축구협회에서는 '말로는 축구장 가보니 야구장'이라는 표어를 만들어 여론에 호소해보기도 했으나 메이저신문들은 축구협회의 애끓는 심정을 외면하고 있었더랬죠.)


 축구협회의 김정남 전무는 '밀폐형 돔구장에서는 천연잔디를 키울 수가 없는데 인조잔디에서는 월드컵 축구대회를 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뚝섬 돔구장 월드컵 불가를 주장하고 나선 것입니다. FIFA 내부에서도 한국이 애초의 약속과 다르게 나오니 공동개최 철회하고 일본 단독개최로 가야한다는 의견이 슬슬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까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던 유력지들도 사설을 통해 의혹을 제기하고 나왔습니다. 조순 시장도 문제가 심각해지자 서울시 간부들을 불러 왜 애초의 계약과 다른 것인가, 당장 계약을 파기하고 LG측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라고 지시합니다. 물론 뚝섬 시유지 불하건도 없던 일로 하라고 강력히 지시합니다.


 불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LG에서는 구본무 회장의 발언은 와전이다, 처음 계약대로 6.5만 수용에 천연잔디 개폐형으로 짓는다고 난리를 떨었지만, 엄청난 건설비를 감당할 능력은 없고 일단 불을 끄고보자는 차원의 언론플레이에 지나지 않았죠. 결국 뚝섬을 LG시티로 만들겠다는 LG의 꿈은 좌절됩니다. 서울시민의 여론도 시민의 재산인 시유지를 헐값에 사기업에 넘긴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격앙합니다.


 이제 돔구장 건설은 물 건너간 것으로 보여졌지만 서울시와 야구계의 축구장 건설 방해공작은 정말 집요했습니다. 서울시는 일단 LG가 약속대로 돔구장을 짓는다고 했으니 월드컵 열리면 그 시설에서 몇 경기를 반드시 해야한다, 하다못해 외국 대표팀들의 연습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려댔습니다. 그리고 잠실운동장을 개보수하여 월드컵 해야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합니다.

 당시 집권당의 중진인 국회의원 정대철(이 사람은 나중에 KBO 총재가 되는데 며칠 하지도 못하고 정치비리에 연루되어 그만 두죠)은 '월드컵경기장도 거품을 빼야 한다, 잠실 보수로 충분하다'는 의견을 중앙일보에 내는 등 서울에 축구전용구장 건설 저지에 안간힘을 씁니다. 나중에 정몽준이 밝힌 바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는 월드컵 경기장 신축 불가 방침을 굳혔고 대통령 면담 시 이 방침을 통보했습니다. 이에 맞서 붉은악마(회장 신인철) 집행부에서는 종로 2가에서 축구전용구장 건설을 위한 시민대행진이라는 대중집회를 열어 여론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쓰기도 했고요..

 잠실을 리모델링할 수는 있는가, 그 비용은 얼마나 드는가 하는 것을 FIFA에서 나온 사람들과 공동으로 검증을 한 결과 상암동에 새로 짓는 것보다 월등히 더 든다는 결론이 나자 여론은 월드컵 경기장을 짓는 게 낫다는 쪽으로 선회합니다.


 결국 '잠실을 개보수하는 것보다 월드컵용 축구장을 짓는 것이 IMF 극복을 위해 유익하다'는 논리로 정몽준이 김대중 대통령을 설득하고 국회의원들로부터 NFC 건립 지지서명을 받아낸 축구협회가 서울시측에 축구계에서도 건설비의 일부를 부담하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지금 우리가 보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서게 됩니다.

 월드컵 한일공동개최가 확정된 후 2년 가까이 끌다가 축구장을 새로 만들기로 결정된 거죠. 공기가 너무 짧은 거 아니냐고 우려했지만 삼성건설이 주가 되어 2년도 채 안되어 세계에서 손꼽히는 축구장이 상암동에 서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서울시와 LG그룹의 계략대로 갔다면 지금쯤 서울에서는 축구라는 종목 자체가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축구팬으로서는 참으로 치가 떨리지 않을 수 없는 밀실흥정이자 여론조작이었습니다.

 문제는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돔구장이건 뭐건 다목적으로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겁니다. 부채꼴 모양의 야구장과 직사각형의 축구장은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잔디 또한 축구장용과 야구장용은 달리 관리되죠. 야구장의 내야는 잔디를 벗겨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축구를 하기가 곤란해집니다. 관중의 편의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관중석의 위치와 구조가 축구와 야구는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2002 당시 최첨단 다목적구장이라고 일본월드컵유치위원회에서 요란하게 선전해 댄 삿포로돔...

 외부에서 잔디를 반입하고 관중석을 가변석을 채택한 일본 삿포로돔의 말로를 보면 하나의 공간에서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한다는 발상이 얼마나 비경제적인가 알 수 있습니다. 삿포로 돔의 관중석을 보면 축구경기를 보기에는 너무 불편합니다. 건설비가 2조원 이상 들었다는데, 거기서 J리그 경기 못합니다. 경기 한번 하는데 대관비용이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이죠.

 지금 삿포로돔은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축구장이건 야구장이건, 애시당초 본래의 목적대로 짓는 것이 비용이나 사후활용면에서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삿포로돔이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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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돔>